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린스턴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경과 == 1777년 1월 2일 밤, 대륙군은 영국군 몰래 숙영지를 떠나 동쪽으로 진군하다가 방향을 틀어 프린스턴을 향해 북쪽으로 나아갔다. 이때 워싱턴은 콘월리스를 붙잡아 놓기 위해 400~500명의 병사와 대포 2문을 개울 가에 남아서 불을 피우고 소란을 피우라고 지시했다. 이들은 동이 트기 전에 숙영지를 떠나 본대와 합류할 예정이었다. 워싱턴은 퀘이커 브릿지 도로를 통해 프리스턴으로 나아가다가 날이 밝을 무렵 프리스턴에서 약 2마일 떨어진 스토니 브룩을 건넜다. 이때 헤센 병사들이 공격하고 있다는 루머가 갑자기 퍼지더니 민병대원 몇 명이 몸을 돌려 남쪽으로 달아났다. 이에 워싱턴은 재빨리 병사들을 진정시킨 뒤 콘월리스의 구원군이 올 것에 대비하기 위해 휴 머서 준장과 캐드왈레이더 소장의 부대를 차출해 트렌턴을 향해 서쪽으로 방향을 틀게 한 뒤 나머지 부대는 프린스턴을 향해 계속 진군하게 했다. 1월 3일 새벽, 모후드 중령이 이끄는 제 17보병대, 제 55보병대, 제 16 용기병대 1,200명이 프린스턴에서 출발해 메이든헤드로 향했다. 이 부대는 이른 아침 안개를 헤쳐 나가다 휴 머서 준장의 대륙군과 마주쳤다. 모후드는 저들이 헤센 병사들이며 콘월리스의 본대에서 탈영한 거라고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가 이내 저들이 적이라는 걸 깨달은 모후드는 뒤늦게 과수원에 병력을 배치하려 시도했지만, 그때는 이미 대륙군이 과수원을 장악한 뒤였다. 이에 모후드는 적을 몰아내기로 결심하고 병사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양측은 서로에게 사격을 가했지만 총검이 부족한 대륙군은 곧 밀려나기 시작했다. 휴 머서 준장은 병사들을 집결시키려고 시도했지만 적의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이윽고 캐드왈레이더의 병사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목격한 모후드는 다시 군대를 포대가 설치된 곳으로 이동시킨 뒤 적을 향해 포도탄을 쏴 적군을 흩어지게 했다. 워싱턴은 흩어진 머서와 케드왈레이더의 부대를 규합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그는 다른 부대를 규합하여 모후드를 향한 공격을 재개했다. 이때 머서의 부대가 끌고 갔던 대포 2문이 전장에 남아있는 걸 확인하고 이를 이용해 적을 향해 포격을 퍼부었다. 이에 모후드는 용기병대에게 적의 측면을 치게 했고 제 17보병대와 제 55보병대에게 메이든헤드로 향하는 퇴로를 뚫게 했다. 다수 병력은 적의 공세를 회피해 퇴로를 뚫는데 성공했지만 일부는 프린스턴으로 퇴각했다. 대륙군이 프린스턴으로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레슬리 준장은 급히 군대를 뉴브런즈윅으로 퇴각하게 했다. 그러나 194명의 병사들은 건물의 두꺼운 벽이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고 믿고 나사우 홀로 피신했다. 이후 프리스턴에 도착한 워싱턴은 적이 나사우 홀에 있는 걸 확인하고 알렉산더 해밀턴 대위에게 적의 항복을 받아내라고 명령했다. 이에 해밀턴은 나사우 홀에 포격을 가하며 항복을 강요했고, 결국 병사 194명은 저항을 포기하고 대륙군에게 귀순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콘월리스의 영국군이 프린스턴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프린스턴 마을에 비축된 방대한 물자를 챙기지 못한 채 프린스턴에서 철수해야 했다. 이리하여 프린스턴 전투는 대륙군의 승리로 종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